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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공격헬기 장례식은 없었다… 진짜 문제는 전술이었다
  • 김대영 기자
  • 등록 2025-12-04 20:37:53
  • 수정 2025-12-09 17: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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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은 군용 헬기가 현대전에서 얼마나 위험에 취약한지, 동시에 여전히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전쟁 초기, 러시아군이 겪은 대규모 헬기 손실은“헬기 무용론”을 부추겼지만, 미국 육군 예비역 장성은“문제는 헬기가 아니라 전술”이라고 반박한다.

호스토멜 전투 당시 우크라이나 군은 길이 3,500m 활주로를 스스로 파괴하며 러시아의 ‘참수 작전’을 좌절시켰고, 러시아 지상 기갑부대가 뒤늦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작전 상의 결정적 시기를 놓친 뒤였다. 전쟁 개전 직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장면은 키이우 북서부 호스토멜(안토노프) 공항 상공이었다. 겨울 숲과 들판을 스치듯 저공 비행하던 러시아 카모프 Ka-52, 밀 Mi-24 공격헬기와 Mi-8 기동헬기 편대가 우크라이나 방공망에 포착되며 방어용 플레어를 난사하는 장면이 생중계되다시피 전파를 탔다.

러시아군의 계획은 안토노프사가 소유한 이 공항을 전격 점령한 뒤, 일류신 Il-76 대형 수송기를 연이어 착륙시켜 병력을 투입하고, 여기서 키이우로 직행하는 공중 교두보를 여는 것이었다. 공중강습에는 러시아의 정예 공수부대(VDV)가 투입됐다.

그러나 작전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호스토멜 일대 우크라이나군이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과 대공포로 러시아 헬기 편대를 맹공하면서 Ka-52, Mi-24, Mi-8 등 각종 기종이 잇따라 격추됐다. 러시아 회전익기 3~10대가 이 작전에서 상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공수부대는 공항 착륙에 성공해 잠시 활주로를 장악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반격으로 러시아군 증원 수송기 착륙은 끝내 무산됐다.

우크라이나 측은 길이 3,500m 활주로를 스스로 파괴하며 러시아의 ‘참수 작전’을 좌절시켰고, 러시아 지상 기갑부대가 뒤늦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작전 상의 결정적 시기를 놓친 뒤였다. 이 실패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굳어졌고, 이후 “회전익기 시대는 끝났다”는 성급한 결론을 낳았다.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쟁 발발 이후 347대의 각종 군용 헬기를 상실했다. 이 중 80% 이상이 개전 첫 해에 집중됐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육군 준장 출신 제프리 슐로서는 “러시아군 헬기가 격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라면서도, 이를 곧바로 헬기 무용론으로 연결하는 건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러시아 헬기들이 한낮에 편대를 이뤄 비교적 높은 고도로 직선 비행하는 장면이 반복됐다”며 “지대공 미사일과 소화기 사격에 모두 취약한, 교과서적인 ‘나쁜 표적’ 비행이었다”고 말했다.

슐로서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코소보 등 전장 경험을 가진 특수전 항공 지휘관 출신이다. 미국 육군 제160특수전항공연대 대대장, 이후 대규모 헬기 공중강습을 전문으로 하는 제101공수사단 사단장을 역임했다. 그는 “러시아가 전쟁 초반 구식 전술과 절차를 고집하면서 회전익기 손실을 자초했다”며 “이는 헬기가 아니라, 작전계획과 지휘부의 실패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군이 비슷한 공중강습 작전을 수행했다면, 전투기·폭격기·전자전기·지상 공격기 등을 대규모로 투입해 적 방공망을 단계적으로 제압하고, 야간·우회 기동으로 위험을 최소화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러시아는 주간 침투를 선택했고, 방공망 무력화도 거의 시도하지 않은 채 공중강습를 강행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슐로서는 “전쟁 첫 두 달이 지나자 러시아 군의 공중강습 의지는 눈에 띄게 꺾였다”며 “다수의 항공기와 특수전 병력이 초기에 소모됐고, 일부 부대는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몇십만 원짜리 소형 드론이 폭탄을 달고 탱크와 참호, 차량을 파고드는 영상이 연일 공개되면서 “값비싼 군용 헬기를 쓸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장은 이제 ‘드론 전쟁’으로 불릴 만큼 각종 무인기(UAV)로 포화 상태다. 몇십만 원짜리 소형 드론이 폭탄을 달고 탱크와 참호, 차량을 파고드는 영상이 연일 공개되면서 “값비싼 군용 헬기를 쓸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 육군과 나토 동맹국들의 선택은 정반대 방향에 가깝다. 군용 헬기는 포기의 대상이 아니라, 운용 개념을 재설계해야 할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육군은 2024년 생존성 문제를 이유로 차세대 무장정찰헬기(FARA) 개발사업을 전격 취소했다. 대신 기존 UH-60 블랙호크와 AH-64 아파치 등에 ‘발사형 효과체(launched effects)’라 불리는 각종 무인기·유도체계를 연동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찰과 선제 타격은 무인기가 맡고, 헬기는 보다 안전한 거리에서 지휘·지원·타격을 수행하는 구조다.

미국 육군은 최근 공식 기고에서 “아파치, 블랙호크, 치누크 플랫폼은 여전히 군에 필수불가결한 자산”이라며 “헬리콥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드론과 결합해 보강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의료후송, 물자 수송, 심층 침투 타격 등 기존 회전익 임무는 드론이 ‘대체’가 아니라 ‘보완’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슐로서 역시 “이제 차이는 헬기를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며 “고정익 전투기, 전자전 자산, 지상 방공, 포병과 긴밀히 통합된 ‘기동전’ 속에서 헬기는 여전히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슐로서가 그리는 미래 전장 속 헬기는 더 이상 수십 대씩 한꺼번에 모여 출격하는 ‘대규모 위용 과시’ 자산이 아니다. 그는 이를 ‘분산된 전력(disaggregated forces)’ 개념으로 설명한다. 과거처럼 거대한 전진기지에 헬기를 몰아넣기보다, 전선에서 떨어진 여러 개의 소규모 급유·재무장 거점을 통해 기체를 분산 배치하고, 필요 시 고속 기동으로 전선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미국 육군은 UH-60 블랙호크와 AH-64 아파치 등에 ‘발사형 효과체(launched effects)’라 불리는 각종 무인기·유도체계를 연동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현대 전장에서 후방 기지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는 트럭에 실은 수십~수백 대의 소형 자폭 드론을 러시아 깊숙한 전략폭격기 기지까지 침투시켜 Tu-22M3, Tu-95, Tu-160, A-50 AEW&C까지 손상·파괴한 바 있다. 전선에서 수백 km 뒤에 있던 공군자산조차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이 때문에 다층 방공망과 체계적인 대(對)드론 방어체계가 헬기 운용의 필수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슐로서는 “러시아 군 고위 지휘부는 이런 합동 기동전 투쟁을 설계·지휘할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전쟁 첫해 막대한 헬기 손실로 인해 경험 많은 지휘관 다수가 전장에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점은 러시아가 소모전·장거리 폭격 위주의 전술로 굳어지는 사이, 정작 우크라이나는 서방형 회전익 전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군은 현재 소수의 소련제 Mi-8·Mi-24 계열 헬기를 운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는 최근 미국 벨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UH-1Y 다목적 헬기, AH-1Z 공격헬기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 해병대가 운용해 온 H-1 계열은 두 기종 간 부품 공통성이 85% 수준으로, 다양한 임무를 한 플랫폼 패밀리로 커버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슐로서는 “미 해병대식 원정 작전 개념은 우크라이나가 전시 상황에서 요구받는 분산·기동전 운용과 잘 맞는다”고 평가했다. AH-1Z는 시험 환경에서 공대공·대(對)무인기 임무 수행 능력도 입증한 바 있어, 저비용 일회용 드론을 대량 투입하는 러시아의 전술에 대응할 수 있는 옵션으로도 거론된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미국 벨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UH-1Y 다목적 헬기, AH-1Z 공격헬기 도입을 추진 중이다.슐로서는 “우크라이나는 단지 지금의 전쟁을 치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후 자국 방위산업과 전력을 재건할 구상을 갖고 있다”며 “헬기 도입 협의 과정에서도 우크라이나가 향후 유지·생산·개량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방안을 중시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라팔 F4, 그리펜 E/F 등 전투기 도입도 추진하는 등 전후를 내다본 공군·육군 항공 전력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회전익 전력이 어느 수준까지 포함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세계적인 흐름만 놓고 보면 군용 헬기는 여전히 ‘미래 병기’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미국 육군은 차세대 MV-75 틸트로터 도입과 동시에 기존 UH-60, AH-64, CH-47F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으며, 폴란드는 96대의 아파치 가디언 공격헬기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역시 Z-21 공격헬기, Z-20T 공수헬기 등 신형 기종을 잇달아 배치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것은 “헬기의 종말”이 아니라, “구식 헬기 운용법의 종말”에 가깝다. 무인기와 장거리 정밀타격 수단이 넘쳐나는 전장에서 회전익기는 더 이상 무방비로 전선에 돌진하는 ‘주연’이 될 수 없다. 대신 기동전·합동전·분산 운용 개념 속에서 고정익, 드론, 포병, 방공과 긴밀히 결합된 ‘지휘·지원형 전투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제 차이는 군용 헬기를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 우크라 전쟁은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실험장이 되고 있다.

K-DEFENSE NEWS | Strategic Analysis D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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